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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시돌 피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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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제 창립자 신부......
신부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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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생애
“나는 복음을 말로 전하지 않고,
삶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 자체가
선교다."
제1대 임피제 (맥그린치) 창립자 신부
1951년 12월
아일랜드 서품
1953년 4월
한국파견
1953년 11월 ~ 1954년 4월
광주대교구 순천 보좌신부
1954년 4월 ~ 1962년 11월
제주교구 한림 주임신부
1962년 11월 ~ 2011년 11월
제주도 이시돌 대표
1982년 ~ 2004년
제주 금악본당 주임신부
2011년
은퇴(현재 이시돌 거주)
2018년 4월 23일
선종
임피제 신부 약력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임피제) 신부는 한국에서
“임피제 신부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제주의 영적·경제적 발전에
평생을 바친 아일랜드 출신의 선교사 신부였습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한 후 한국에 파견되었고,
이후 제주도로 부임하여 일생을 건 사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1년, 그는 제주 서광리에 **성이시돌 목장
(Isidore Ranch)**을 설립하고 현대적 축산 기술을 도입하여
제주의 농업·축산 경제를 혁신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푸른눈의 돼지 신부”, “제주 축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농촌 개발, 사회복지,
지역공동체 사업을 이끌어 왔습니다.
사목 활동 전반에 걸쳐 임피제 신부님은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교육기관, 사회적 기업, 자선시설을
설립하며 헌신적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삶은 봉사, 연민, 그리고 가톨릭 선교 정신의
완전한 표본이었습니다.
말년에는 제주 이시돌 공동체에서 은퇴하여 기도와
소박한 삶으로 계속해서 많은 이들을
인도하고 고무하셨습니다.
임피제 신부님은 주님 품 안에서 선종하시어, 신앙과 사랑,
봉사의 빛나는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주요 업적
1. 성 이시돌 목장 설립 (1954년)
1954년 제주도에 도착하여, 당시 가난하고 황폐했던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시돌 목장(St. Isidore Farm)을
설립했습니다.
성 이시돌은 농부들의 수호성인 성 이시도로
(Isidore the Farmer) 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이 목장은 단순한 목장이 아니라, 목축·낙농 기술 교육,
농촌 공동체 형성, 의료·복지사업등을 함께 수행하는
사회복지 복합기관이 되었습니다.
2. 한국 낙농 산업 발전에 기여
아일랜드에서 들여온 소 사육법과 목초지 기반 낙농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한국 낙농 기술의 근대화를 이끈 공로로
“한국 낙농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제주시 한림읍의 제주목장, 하귀 이시돌 목장 등이
그의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3. 사회복지·의료 활동
가난한 농민을 위해 한림 성이시돌 복지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농민 의료보험 제도의 시초 격인 지역 보건사업을 시작했고,
농촌 부녀자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 사업도 추진했습니다.
[출처] 설립자 임피제(Patrick James McGlinchey) 신부
-작성자 성 이시돌 피정의 집
임피제 창립자 신부님 영상보기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임피제) 신부 장례미사
하느님, 저에게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시오.
제주도를 사랑한 ‘푸른눈의 돼지신부’ 선종
푸른 눈의 돼지 신부님, 제주 축산업의 아버지 임피제 맥그린치 신부님
저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고 합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낙후되어있던 제주도민을 지나칠수 없어 들어와 산지 50년. 눈 감는날까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ㅣKBS 2009.02.26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느님
나는 한국에 거름이 되기 위해서 왔습니다.
제주도민의 유일한 희망, 50년을 한국을 위해서살아 온 신부님
농촌 개발에 젊음을 바친 이방인 신부 / 맥그린치 신부님
맥그린치 신부님의 생시 육성
임피제 신부 장례미사 거행, 이시돌 글라라수녀원 묘지에 안장